플라톤은 모든 국민이 다른 자리를 넘보지 않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참된 개인의 자세이자 바람직한 사회 상이라고 했다. 노동을 하는 사람은 노동을 전쟁을 하는 사람을 전쟁을 치르는 일을 지배 계급은 다스리는 일을 충실한 국가가 최선의 모습이라고 했다.
성서에 나와있는 직업적 윤리관은 바로 여기서 부터 출발을 한다. 어쨌던 그렇게 노동을 하는 사람은 노동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했었다. 평생! 적어도 이 시절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모든 일은 사람의 손으로 해야했기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노예는 정말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죽어야 했다.
글을 배울 수도, 음악을 즐길 수도,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남는 시간은 지배자를 위한 노역에 시달리는게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Holy Day)는 휴식과 재충전의 의미를 던져주었을 것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일자리가 크게 변하였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의 개념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과거의 일자리는 토지를 바탕으로하는 1차적인 생산활동이 대다수 였는데, 농업혁명으로 인해 토지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농촌 인구가 크게 증가 했다. 즉 비 노동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도시로 모여들어 산업혁명을 통해 크게 확대된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것이다. 인간의 노동의 중심이 1차 산업중심에서 2차 산업중심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초기 산업화 시절 노동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근로시간 기준도 없었고, 아동 노동 금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돈의 힘 앞에서 주일의 개념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을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어떤 일도 서슴치 않았다. 이런 최악의 노동환경이 바뀌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이전 전쟁들과 여러면 측면에서 차별화 되는 전쟁이다. 그 중 가장 큰 차별화 요인을 꼽으라면 바로 대량살상이다. 1차 세계대전의 인명 손실은 어마 어마 한데 단인 예로, 1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수는 역사상 기록된 이전의 모든 전쟁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보다 많다. 약 32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중 940만명이 사망했고, 2300만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와 같은 대규모 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노동력의 부족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노동환경의 개선과 휴일의 제도화로 이어졌다. 전후 호황기를 거쳐 대공황의 발생은 노동 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면서 경제 전체가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일자리의 감소는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고 소비의 감소는 생산의 감소 다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 사회는 노동 시간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택했다. 1935년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는 협약을 채택했다.
2차 세계대전 후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고용시장은 더욱 커졌고, 고용문제는 한동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고용시장이 줄기 시작했다. 우선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성작세가 둔화되었다. 거기에 또 다른 문제가 덧붙여 지면서 고용시장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첫번째로 자동화를 바탕으로한 생산기술의 향상이다. 생산기기의 발달로 필요인력이 크게 줄었다. 두번째로 세계화를 통한 저임금 노동력의 출현이다.
기업들은 생산 자동화와 저임금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대부분의 선진 사회에서는 고용시장의 불안이 가중되었다. 서구 사회는 그런 변화는 2~30년에 걸쳐 겪었지만 우리나라는 IMF를 기점으로 불과 10여년 만에 겪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은 계속 성장하지만 고용시장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생산 기술의 발달로 노동 수요는 줄고 기업의 인건비 비율은 점차 줄고 있는 것이다. 생산 기술은 보다 나은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자본은 그것을 재분배 하기 보다는 줄어든 일자리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제작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위기이다. 시장은 극도로 악화되고 고용시장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대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커지고 이익은 극대화되었다. 그 들의 이익은 증가해도 고용시장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1935년의 제정된 주 40시간 노동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노동시장이 줄어든다면 지금 남아 있는 일자리도 몇년 지나면 저임금 국가로 다 이전할 수 있다. 현재 고용시장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R&D 분야도 머지 않아 중국등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각종 기술의 발달로 기술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아 질 것이고, 고등교육을 받을 저임금 국가 노동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현 추세로는 불과 10여년 후면 그런 시장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즉 자본이 말하는 대로 성장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1968년에 일어난 프랑스 5월 혁명들의 시도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 물질숭배,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 부의 증대로 인한 자본의 비인간화와 개인의 일상적 소외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한다.
경제 위기를 빙자한 권위주의의 확대 그리고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 일자리의 무기화 이 모든것은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아직도 근로시간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얻은 이익의 재분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 구성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준수에 대한 노력, 그리고 생산 자동화가 고용시장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 필요하다. 현재의 위기가 아닌 미래의 위기까지 거들먹 거리면서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그들이 과연 그러한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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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던 책이죠.
이번에 산 책입니다. 신나게 읽어야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