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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4 | 화려한 휴가
2007/07/12 | 무서운 홈에버
2007/07/10 | 샌드위치속 부침개 (1)
2007/07/09 | 누룽지 드세요
2007/07/06 | AK-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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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9/03 15:16
나의 알람시계는 라디오이다. 알람소리 대신 라디오가 켜지기 때문에 기분나쁘게 깨지도 않고, 뉴스도 나오고, 노래도 들을 수 있어서 괜찮은 것 같다. 뭐 어쨌던 사족은 접어두고, 요즘 각종 미디어에 주로 나오는 소재는 학력위조와 아프카니스탄 인질 소식인것 같다. (덕분에 명박이 아저씨 검증문제는 속 들어간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차량 개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낮은 등급의 차를 타면서 차의 모양을 더 높은 등급의 차 처럼 바꾸는 것은 학력위조와 같은 외모 중시 현상과 같은것으로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시커먼 선팅을 하고, 빵빵 거리는 카오디오를 달고 더 나아가 머플러에 엔진까지 개조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잠이 확달아나 버렸다. 아니 요즘 시대가 어떤 때인데 저런 기사를 쓸까? 우리나라는 완성차 업체가 부품시장까지 독점하는 독특한 자동차 시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는 저가의 부품을 쓸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정품이란 이름을 단 비싼 부품을 쓰도록 알게 모르게 강요받는 시스템이다. 독점적으로 공급하다 보니 비싼 가격을 불러도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게 현실이다. 자동차는 소유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고유의 공간으로서 먼거리를 이동하기 위한 탈거리로서... 자신을 나타내는 또 다른 모습으로서 그런 기계에 대해 자기가 조금 더 꾸미는 것이 왜 나쁜것인가?

자기의 차를 더 꾸미는 것을 학력위조와 동급으로 매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동차 업체의 스폰을 받은 기자가 내놓은 기사가 아닌가 싶은데? 이런 내용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가의 공영방송에서 버젓히 나올 수 있다는게 아이러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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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3 15:16 2007/09/0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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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9/01 02:15
어느 날 선배 한분이 찾아와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똑똑한 녀석으로.. 똑똑하고 능력있는 개발자는 그리 많지 않다. 다른 후배 하나를 소개시켜줬다. 이 후배는 그 회사에 들어가자 마자 캐나다로 보내졌다. 하루 5시간 자는 것도 많이 봐주는 거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남들이 개판으로 만들어놓은 코드를 하염없이 디버깅 하면서 2달을 지냈다. 수당도 없다. 출장수당은 하루 35달러.. 캐나다에서 하루 3끼 밥을 먹는데도 부족한 돈이다... 얼마전 IT 노예 노동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나는 이 후배를 막장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크게 바라보면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을 채우고,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적당한 재화를 가질 수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태어날 때 부터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노동이 필요없는 극소수의 행운아가 존재한다. 이 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복잡한 이야기가 참 많은데 후배 녀석과 한잔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개발 일정이란 미명아래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자기를 위한 최소한의 여가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일하는 것은 노예 노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술입국을 떠들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덕에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수는 계속 줄어들고, 공대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대기업이 아닌 곳에서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는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먼저 폭탄을 하나 만들어 하청 업체로 돌리기 시작하는데 이 폭탄은 하청업체에서 터지게 되어 있다. 알면서도 내 앞에만 터지지 않으면 되므로, 신경쓰지 않는다. 폭탄을 맞은 사람은 악 소리도 못하고 사라져 간다. 중소기업, 하청업체 사장들은 자신의 사람들이 폭탄을 맞을 것을 알면서도 받을 것을 강요하는 데, 가미가제 특공대 조장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 산업은 노동 집약적 산업이다. 어떤 개발을 하려고 해도 처음에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 기반이 닦여진 이후에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산업이다. 무조건 조지면 한번은 나오지만 조짐을 당한 개발자는 그것으로 끝이다. 조짐을 당해 만들어진 코드를 다시 보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 코드는 처음에 한번을 위한 무언가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식이라면 앞으로 10년뒤에는 아무도 이 바닥에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노동력은 결코 무한한 재화가 아니다. 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정부, 기업 요직에 쳐박혀서 수많은 폭탄을 만들어 우리의 젊은 이들에게 안겨왔다. 그게 우리나라 IT 산업의 그늘이다. 그 10년 뒤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꿈꾸던 IT 키드는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능력만 된다면 의사, 약사 또는 경영을 공부하기를 원한다.

노예 노동은 이렇게 우리 산업을 바꾸어 가고 있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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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1 02:15 2007/09/01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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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8/26 17:53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오지마(유황도)를 소재로 연달아 두개의 영화를 제작했다.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 From Iwo Jima>이다. 두 영화 모두 각각의 제목을 가진 책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 전투의 참혹함과 미국 정부의 허황된 전쟁 영웅 만들기를 비판하였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이오지마 전투 당시 이오지마 수비대 대장이었던 쿠리바야시 타다미치가 가족에게 보낸 41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이오지마 전투의 실상을 파했친 책이다.

이오지마 전투는 미군과 일본군과 벌인 지상전 중 유일하게 일본군의 희생자 보다 미군 희생자가 많은 전투였고, 전장 자체도 워낙 험해서 이오지마는 지옥이라는 표현이 나올정도로 험한 전장이었다고 한다. 이오지마는 도쿄에서 정남쪽으로 약 1200km 떨어진 섬으로, 크기는 여의도의 약 2.2배 정도로 가로 8km 세로 4km 정도의 화산섬이다. 휴화산이고, 물도 없고 작물도 없이 잡초만 자라는 미군은 2차 세계대전중 단일 면적에 가장 많은 포탄을 투하한 곳이라고 한다.

여의도 2.2배 정도의 작은 섬에 미군 6만명과 일본군 수비대 2만1000명이 혈투를 벌여 미군 약 28000명의 사장자를 내었고 (전사자 6821명, 부상자 2만 1865명), 일본군은 약 2만 129명이 전사하여 사실상 수비대가 전멸했다. 대부분의 시신은 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이오지마는 섬이 평탄하여 비행장을 만들기 좋았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그 작은 섬에 두개의 비행장을 만들고, 이오지마 전투 직전에는 3번째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태평양에 가라안지 항공모함으로써 이오지마의 위치는 전략상 중요한 거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양군은 이 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좁은 섬에 어마어마한 병력을 투입했다. 허나, 일본군은 그 섬에 투입된 순간 바로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오지마의 점령은 일본 전역의 공습이 가능한 것을 의미했으나, 당시 일본군 지휘부는 전멸할 때까지 싸우라는 지시만 내리고 이오지마를 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본인들은 이오지마를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이오지마를 버린 자신들의 선택을 숨기려는 듯... 이오지마의 일본군 사령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는 가족에게 보낸 유언장과 같은 편지를 비롯하여 가능한 많은 기록을 남겨 이오지마에서 숨져간 병사들과 자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였다. 쿠리바야시 타다미치가 이오지마에서 벌인 작전은 미군에게 너무도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일본 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면, 나도 이 전투를 그냥 지나쳐왔겠지만 이 영화 때문에 쿠리바야시의 편지를 보고 싶어져 책을 샀고, 단숨에 읽어내렸다. 우리나라에게 일본군은 좋은 감정을 일으키기 어려웠고, 이오지마에서 숨져간 한국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 출신 일본인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조선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고소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오지마에서 싸우다 죽어간 일본인들이 보인 행동은 단순히 광기로 표현할 수 없다. 그들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것 뿐이다. 자신들이 버려진 것을 알고서도 끝까지 싸운 그들의 용기에 감동한 사람이 정작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들이었다는 것에 묘한 기분마져 든다.

사실 영화 자체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 하려다 보니, 이오지마 전투에 대해 어느정도 알지 않는다면, 의미없는, 단지 힘든 곳이라는 생각만 들지도 모른다. 이오지마는 물도 없고, 전투 당시 제대로 된 건물은 단 한채도 존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군은 동굴과 동굴을 파서 진지로 연결하고 천막과 동굴 속에서만 생활하였다고 한다. 물은 빗물을 받아서 생활했다. 씻을 물은 당연히 없었다. 그런 험한 상황에서 무려 36일 버티며 미군을 괴롭혔다. 탄환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우고, 탄환이 떨어지면, 수류탄, 대전차 지뢰를 몸에 달고 적진에 뛰어 들었고, 그거 조차 없으면 대검만으로 싸우러 달려들었다. 광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 2010 06 15 - 전사자 숫자 오류를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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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17:53 2007/08/26 17:53
Personal | 2007/08/10 18:46
새로 나올 고액권 도안에 사용한 인물 10인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김구, 장영실, 장보고, 한용운 심지어 주시경까지 나름 참신한 인물들이 등장한 것 같다. 김정호, 정약용, 장영실등 기술 사회를 반영하는 인물이 대거 등장한 것이 더 좋았다. 장영실이란 이름을 보다 보니 갑자기 장영실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그가 노비 출신으로 손재주 하나로 성공했으나, 그가 죽은 날은 기록에 남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갑자기 왜 기록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아본 그의 최후는 순탄치 않았다. 기록은 다음과 같다.

1442년 대호군(大護軍) 장영실은 그 해에 세종 임금이 탈 가마인 안여(安輿)를 만들었다. 그러나 종묘로 행차하던 도중 교군 (가마 메는 사람) 한 사람이 넘어지면서 가마가 부서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장영실은 직첩을 회수당하고 곤장을 맞았다. 이후 1450년경에 세상을 떠난것으로 추측된다.

성군이라고 불리는 세종이지만, 기구를 잘 못 만들어 임금의 몸을 상하게 한 죄는 묻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그 죄로 그 간의 공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죄인으로 살게된 그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 조선에서 왜 기술이 더 나올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의 최후를 보니 새로운 화폐도안에는 장영실을 넣고 싶어진다. 만인을 편하게 하는 기구들을 수 없이 만들었으나, 1인을 위한 가마를 그것도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떠날 수 밖에 없던 그의 삶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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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8 추가

요즘 대왕세종에 장영실이 많이 나온다. 사농공상의 유교적 신분제도 사회에서 세종의 장영실 챙겨주기는 유생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세상을 벌컥 뒤집을 일이 아니던가. 과거의 구습이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것을 유연하게 바꿔가는 것도 중요할터  신분제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런 모습이 르네상스 이후 유럽과 유교사회의 차이를 만들어가는 단초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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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0 18:46 2007/08/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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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8/04 23:11
무겁고, 또 무거운 주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가해자들이 더 떳떳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를 무겁게 하고, 그 불편한 진실이 이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한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하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분명 상업영화이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연일 근래 최다 관객 동원에 대한 기사를 내놓으면서 이 영화가 상업영화라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아쉬운 점은 권력실세에 대한 이야기에 대하여 어쩌면 TV 드라마 보다 더 적게 다루지 않았는가 싶다.

영화를 보면 군인들이 나쁜놈이고 시민들은 착한 놈이라는 것인데, 뭐 영화에서는 단순한 이분법이 좋겠지만 적어도 이런 소재에 대해서는 좀 더 다른 접근을 했으면 했는데 많이 아쉽다.

불과 27년전의 이야기 이지만, 아직도 광주 사태가 청산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오늘도 다시 광주를 가지고 검색을 해보니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파 공작원이 주동한 폭동사건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사이트가 광주민주화운동 사이트보다 먼저 뜨는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6.25가 1950년에 발발했는지도, 우리나라가 언제 광복을 하고, 건국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방팔방 널린 마당에 광주의 진실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더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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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4 23:11 2007/08/04 23:11
Personal | 2007/08/03 12:52
아침에 "대학도 백화점·찻집·영화관 할 수 있다"란 제목의 기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정부의 대학 운영 정책에 대한 방향이 이제는 완전히 굳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민정부 이래 가속화 된 교육의 상업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것 같아 보인다.

대학 자율화 조치 이후 등록금은 연평균 10%이상 가파르게 올라왔으며, 학생들이 낸 등록금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채 인상되고, 대학 재단들은 그 돈으로 각종 건물과 기자재들을 사들이며 자신들의 재산을 불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이 보다 편하게 장사하는 곳이 또 있을까?

과거에는 학교앞 밥집, 찻집, 영화관이 학기중에는 한 몫 챙겨왔지만, 대학당국은 그마져도 배가 아펐던 모양이다. 도대체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얼마나 삥을 뜯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서울의 모 대학안에 스타벅스에 교보문고 까지 들어간다더니, 외주 회사에 주기 아까웠는가? 책한권 읽지 않은 대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절반을 넘어가는 이 상황에 학교 수업을 따라 가지 못해 과외를 받는 대학생이 출현하는 이 사태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 보다는 자신들의 학교 수준을 입학생의 수준으로 맞추려는 대학당국의 시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던 교육부가 어찌 그리 쉽게 이런 것에 대해서는 허가할 수 있는지?

이 법안을 입안한 정책 당국자가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대학과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교육이란 이름 아래 이뤄지는 도둑질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분명 잘 못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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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3 12:52 2007/08/0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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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7/12 19:17
까르푸를 이랜드가 인수한다고 하였을 때 많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랜드가 그렇게 크게 성장했던가 하면서 놀랐지만, 그 놀라움은 이내 우려로 바뀌었다. 엄청난 대출을 통해 인수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까르푸도 그렇게 큰 이익을 내지 못했는데 무슨 재주로 이랜드는 어마어마한 이자를 지급할 수 있을까? 요술 방망이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요술 방망이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이랜드가 바라본 요술 방망이는 근로자들에게 있었나보다. 애덜 학원비라도 벌어보고자 나오는 어머니들의 피를 빨아 그 대가를 지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독과점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계약에 딜을 해주었지만, 그 딜의 결과가 많은 사람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 것 같다.

그래서 이랜드의 편이 되어 불법 파업이라며, 경찰력 동원 해주는 것인가? 지금의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은 누가봐도 다 알 수 있는 것인데, 그 문제를 악용하는 사람이 이렇게 바로 나타나는데 눈을 감고 대권만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웃긴다. 특히 여권 대선 주자중 지금의 비정규직 법안이 문제가 없다는 사람을 보면 위선자가 아닌가 싶다.

홈에버 만 탓하긴 웃기지만 그들의 근로자에게 보인 태도는 너무 괴씸한 것 같다. 홈에버가 멀어서 갈일은 없지만 나역시 홈에버 불매운동에 한 몫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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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2 19:17 2007/07/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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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7/10 08:40
새로운 영양사의 취향은 상당히 독특한 것 같다. 오늘 아침 메뉴는 샌드위치인데, 제목은 김치계란 샌드위치였다. 김치 계란.. 어디선가 퓨전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맛은 영락없이 부침개의 맛이다. 샌드위치 빵과 섞이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메뉴를 고안할 수 있다니 범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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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0 08:40 2007/07/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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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7/09 09:50
회사 식당에 영양사 분이 새로오셨다. 그와 함께 신종 메뉴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쌀국수라던가, 유산슬 밥 같은게 나온다. 수요일은 아예 양식의 날로 지정되었다. 지겨워진 식당 메뉴에 신선함을 더해서 좋은데,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종종 실수를 한다.

그 실수가 오늘 내앞에서 이뤄지고 말았다. 아침 식사 마감시간에 간신히 도착해서 수저를 챙겨들고 밥을 가져가려 하는데, 밥이 없는것이 아닌가? 스프인가? 하고 가져가다 보니 몬가 이상하다. 국이었다. 밥이 떨어진 것이다. 헉.!! 9시도 안되었는데 밥이!! 식당아주머니가 죄송하다고 하시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새로온 영양사 분에게 밥이 떨어지면 말을 해야지 하며 핀잔을 주며. 부지런히 밥을 챙겼다.

잠시후 전자렌지 앞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찬밥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전자렌지에서 데웠다. 헌데 아주머니가 전자렌지에서 밥을 꺼내다 그만 엎어버리고 말았다. - -;;

친절한 영양사 아가씨.. "정말 죄송한데요 누룽지 드세요..". 한 주의 시작을 누룽지 드세요로 시작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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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9 09:50 2007/07/0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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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7/06 23:12
AK-47이 개발된지 60년이 되었다고 한다. 60년동안 1억정이 넘게 생산되어 전세계 방방 곡곡 전쟁이 있는 곳이면 항상 따라다니는 총이 되어버렸다. 아주 어린 소년병부터 오사마 빈 라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다룰수 있는 이 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변변한 자동소총 하나 없어 고생하던 소련군을 위해 만든 총이다. 7.62mm 소총탄을 사용하며, 강선은 4조 우선으로 이뤄져 있다. 구조가 워낙 단순해서 정글에서 부터 사막, 동토에 이르기 까지 어느 환경에서나 잘 작동하고 아무렇게나 굴려도 고장이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

미국의 M-16 계열의 총등을 주기적으로 청소해주지 않으면 고장나기 일수였는데, 이 총은 그런 문제가 거의 없다고 한다. M-16이 총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합성수지를 곳곳에 사용한 반면, AK-47은 합성수지가 부족한 나라에서도 사용하기 쉽도록 목재를 많이 사용하였다. 덕분에 AK-47을 생산하는 공장은 전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 시절 미국은 아프카니스탄 무자헤딘을 지원하면서 미국제 무기 대신 무기상을 통해 폴란드산 AK-47을 대량구매하여 뿌렸으며 덕분에 아프카니스탄에서 AK-47은 단돈 1불에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다이아몬드, 금을 차지하기 위해 AK-47이 많은 피를 부르고, 이라크에서는 오늘도 AK-47로 미군과 싸우고 레바논, 팔레스타인, 콜롬비아의 마약갱들에 이르기까지. 1년에 25만명 정도의 사람이 이 총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고 하니. 진정한 대량살상무기가 AK-47이라는 것은 빈말이 아닐 것이다. M-16을 만든 유진 스토너는 로열티로 인하여 큰돈을 벌었지만, AK-47을 만든 칼라시니코프는 월 300달러의 연금에 의지해 생활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만든 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에 안타까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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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23:12 2007/07/0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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