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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 2007/08/10 18:46
새로 나올 고액권 도안에 사용한 인물 10인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김구, 장영실, 장보고, 한용운 심지어 주시경까지 나름 참신한 인물들이 등장한 것 같다. 김정호, 정약용, 장영실등 기술 사회를 반영하는 인물이 대거 등장한 것이 더 좋았다. 장영실이란 이름을 보다 보니 갑자기 장영실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그가 노비 출신으로 손재주 하나로 성공했으나, 그가 죽은 날은 기록에 남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갑자기 왜 기록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아본 그의 최후는 순탄치 않았다. 기록은 다음과 같다.

1442년 대호군(大護軍) 장영실은 그 해에 세종 임금이 탈 가마인 안여(安輿)를 만들었다. 그러나 종묘로 행차하던 도중 교군 (가마 메는 사람) 한 사람이 넘어지면서 가마가 부서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장영실은 직첩을 회수당하고 곤장을 맞았다. 이후 1450년경에 세상을 떠난것으로 추측된다.

성군이라고 불리는 세종이지만, 기구를 잘 못 만들어 임금의 몸을 상하게 한 죄는 묻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그 죄로 그 간의 공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죄인으로 살게된 그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 조선에서 왜 기술이 더 나올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의 최후를 보니 새로운 화폐도안에는 장영실을 넣고 싶어진다. 만인을 편하게 하는 기구들을 수 없이 만들었으나, 1인을 위한 가마를 그것도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떠날 수 밖에 없던 그의 삶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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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8 추가

요즘 대왕세종에 장영실이 많이 나온다. 사농공상의 유교적 신분제도 사회에서 세종의 장영실 챙겨주기는 유생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세상을 벌컥 뒤집을 일이 아니던가. 과거의 구습이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것을 유연하게 바꿔가는 것도 중요할터  신분제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런 모습이 르네상스 이후 유럽과 유교사회의 차이를 만들어가는 단초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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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0 18:46 2007/08/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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